동양미술사에서 알아야 할 키워드로는 묘법,묵법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고 그에 따른 개념을 알아보도록 하자.
목차
-묘법의 이해
-철선묘와 점두점
-치형돌기와 파묵
-피마준과필묵
철선묘는 인물화의 선묘법(線描法).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두께로 예리하고 팽팽하게 그리는 필선이다. 고고유사묘(高古遊絲描)와 비슷하지만 더 강하고 팽팽한 긴장감을 나타낸다. 불화 등 도석인물화와 초상화의 의습 표현에 많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첨두점은 수묵 산수화에서 나뭇잎을 묘사하는 기법. 붓의 뾰족한 끝을 사용하여 위로부터 아래로 찍는다. 잡초의 표현이나 점태 의 일종으로 사용된다. 황공망 계열의 산수화에서 밋밋한 산봉우리 표현에도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치형돌기는 동양화에서 산의 윤곽선 바깥쪽에 이빨 모양으로 돋아난 부분을 가리키는 것. 이곽파 화풍, 특히 금대(金代) 및 원말명초(元末明初)에 도식화된 산수화에 자주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파묵은 수묵화의 한 용묵법(用墨法). 먹을 깨뜨린다는 뜻으로 ‘담묵(淡墨)을 사용하여 농묵(濃墨)을 깨뜨린다 ’(황공망黃公望(후앙 꽁왕, 1269~1454), 《사산수결寫山水訣》)든가, ‘농묵을 사용하여 담묵을 깨뜨린다’는 식으로 사용된다. 먹의 농담으로 대상의 입체감을 나타내는 기법이다. 먹면 외에 붓에 의한 윤곽선을 병용하기도 한다. 황빈홍黃賓虹(후앙 빈홍, 1864~1955)은 “파묵법이란 옅은 것은 짙은 것으로 깨뜨리고, 젖은 것은 마른 것으로 깨뜨리는 방법이다”라고 했고, 반천수潘天壽(탄 티앤서우)는 용묵에 대해 “먹이 마른 후에 다시 겹쳐 그리는 것을 적(積)이라 했고, 먹이 마르지 않은 축축한 상태에서 겹쳐 그리는 것은 파(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데에 파묵법을 사용하는 것은 먹빛의 농담이 서로 침투하여 매끄럽고 생기 있는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성당(盛唐)시기인 8세기 초에 나타났으며, 처음에는 산수수석화(山水樹石畵)에만 사용되었다. 정창원正倉院의 <조모립녀도鳥毛立女圖>에 나오는 바위에 그 예가 보인다. 발묵보다 앞서 나타난 용묵법으로, 후세의 예로는 부벽준이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피마준은 동양화 준법 중 가장 기본적이며 많이 사용하는 준. ‘마피준(麻皮皴)’이라고도 한다. 마(麻)의 올을 풀어서 늘어놓은 듯이 약간 구불거리는 실 같은 선들을 엮어놓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다소 거친 느낌을 준다. 대체로 흙이 많은 토산(土山)을 묘사할 때 쓰며 남종화와 관계가 깊다. 오대(五代)의 동원董源(똥 위앤)으로부터 비롯되어 원말(元末)의 황공망黃公望(후앙 꽁왕, 1269~1454)에 의해 거의 완벽하게 정립되었고 명明, 청淸의 남종화가들이 많이 활용하여 남종화의 정도(正道)로까지 칭해졌다고 합니다.
필묵은 동양 회화의 용어. ‘필(筆)’은 통상적으로 구(鉤), 륵(勒), 준(皴), 찰(擦), 점(點) 등의 필법(筆法)을 가리키며, ‘묵’은 홍(烘), 염(染), 파(破), 발(潑), 적(積) 등의 묵법(墨法)을 가리킨다. 이론상으로는 필을 강조하는 것이 주도적이며 묵은 필요에 따라 나오는데, 서로 보조하면서 대상을 완전히 모사하고, 의경(意境)을 표출해내며, 그리하여 형신겸비(形神兼備)의 예술적 효과를 얻는다고 할 수 있다.
당唐의 장언원張彦遠(즈앙 이앤위앤, 815~875경)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는, “골기형이(骨氣形以)는 뜻(意)을 세우는 데에 근본을 두지만, 붓놀림(用筆)으로 귀결된다” “먹을 사용하되 온갖 색깔(五色)이 갖추어진 것처럼 한다면 뜻을 얻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입의(立意)와 필묵의 주종관계를 가리키는 것이라 하겠다. 북송北宋의 한졸韓拙(한 주어)은 《산수순전집山水純全集》에서, “필로써 형질(形質)을 세우고, 묵으로써 음양을 나눈다”고 하여 필과 묵의 관계를 구분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청대(淸代)의 심종건沈宗騫(선 쫑지앤)은 《개주학화편芥舟學畵編》에서 필묵의 관계를 양분하는 데에 반대하면서, “필묵이란 두 글자를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고, 묵에 대해서는 더더욱 드물다. 오늘날 사람들은 옅은 먹물로 오목한 곳(凹處)과 어두운 곳을 메우는 것을 묵이라 하는 것을 종종 보는데, 이는 묵으로 색을 대신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그것이 묵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소치이다. 또한 필이 이르지 않는 곳에 어찌 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묵이 이른 곳이라도, 묵이 필을 따라 그 신채(神彩)를 드러내지 못한다면, 기껏 필이 있다고 할 수 있을 뿐, 묵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석도石濤(스 타오, 1641~1717)는 《석도화어록石濤畵語錄》에서 ‘필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필과 묵이 만나면 자욱한 상태(絪縕)가 되고, 자욱한 상태가 구분되지 않으면 혼돈(混沌)이 된다. 혼돈을 피하면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산을 그림으로 그리면 그것을 신령스럽게 하고, 물을 그리면 그것을 생동하게 하고, 숲을 그리면 그것을 생기 있게 하고, 사람을 그리면 그것을 뛰어나게 해야 한다. 필묵의 만남을 획득하고 자욱한 상태의 구분을 이해하게 되면, 작품이 혼돈을 피하게 되어 고금에 길이 전해짐으로써 일가(一家)를 이루게 된다. 이 모두 지혜로운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현대의 황빈홍黃賓虹(후앙 빈홍, 1864~1955)은, “필법을 논하자면 반드시 묵법과 함께 논해야 하는데, 묵법의 묘(竗)는 모두 필로써 표출된다”고 생각했다. 동양화에서 강조하는 필묵은 상보상성(相補相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쪽에 치우쳐 다른 하나를 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엽준은 연잎 줄기처럼 생긴 동양화의 준법을 말합니다. 물이 흘러내려 고랑이 생긴 산비탈 같은 효과를 내므로 주로 산봉우리의 표현에 사용한다. 긴 선으로 긋는 준이기 때문에 피마준과 같은 계통이라 할 수 있다. 중국 북방 산수에서 양강(陽剛)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한 준법이 부벽준이라면, 남방산수의 차분하고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한 준법은 하엽준을 비롯하여 피마준, 해삭준이라 하겠다. 원대(元代) 화가 조맹부趙孟頫(자오 멍후, 1254~1322)의 그림인 <작화추색도鵲華秋色圖>에서 볼 수 있으며 남종화가들에 의해 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산수에서도 그 예를 볼 수 있습니다.
해삭준은 피마준에서 약간 변형된 동양화 준법으로서 밧줄을 풀어헤친 것같이 꼬불꼬불한 필촉으로 처리되는 것이 특징저깅라고 합니다.
해조묘은 동양화에서 나뭇가지를 그리는 기법을 말합니다. 마른 나뭇가지의 구부러진 형상을 게의 발처럼 날카롭게 그리는 수지법(樹枝法)으로 화북계통 산수화에서 앙상하게 헐벗은 한림(寒林)의 가지나 말라 죽은 고목(枯木)의 가지를 그릴 때 사용한다고 전해집니다. 이곽파李郭派 산수에 많이 쓰였으며 조선초기의 안견파安堅派도 이를 받아들여 애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초점은 동양회화에서 나뭇잎을 그리는 기법을 말합니다. 후추알같이 작고 둥그스름한 묵점(墨點)을 조밀하게 찍는 수법으로, 가령 산봉우리 부근의 멀리 보이는 나무를 표현할 때 흔히 쓰인다고 합니다. 바위나 낮은 언덕에 찍는 점태를 일컫는 경우도 있지만 또 거연巨然(쥐 르안), 오진吳鎭(우 즈언) 계열의 산수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산봉우리를 표현하는 만두법(巒頭法)으로 쓰인 예도 있다는 것을 중요합니다..
호초점수은 동양 회화에서 근경의 수목묘법(樹木描法)의 하나입니다. 호초점 같은 작은 흑점을 밀집시켜 나뭇잎을 표현하는 수법입니다. 원대(元代)의 오진吳鎭(우 즈언)이 즐겼다고 하는 매화서족점(梅花鼠足點)과 같은 계열의 묘법이며, 문인 산수화에 흔히 쓰인다고 전해집니다.
경직도는 동양 인물 풍속화의 한 화제(畵題)를 말합니다. 농민의 부지런함과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을 임금에게 알리고, 임금이 백성들의 생업인 농업과 잠업에 대한 정책을 힘쓰도록 촉구하기 위하여 제작되었다. 일종의 권계화(勸戒畵)로 왕실의 교육에 이용되었다. 남송南宋의 화가인 누숙樓璹(로우 즈우)이 고종高宗에게 진상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절강성浙江省의 현령을 지낸 누숙은 빈풍칠월도에서 힌트를 얻어 경직도를 그렸다고 합니다
농업과 잠업(蠶業)의 일을 시기 순으로 묘사한 경직도와 잠직도(蠶織圖)를 경직 시(耕織詩)와 함께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직도에는 농사를 짓는 21개의 장면이 묘사되고, 잠직도에는 베 짜는 24개의 장면이 표현되어 총 45폭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각각 오언시(五言詩)를 붙이는데, 원본은 남아있지 않다. 이후 많은 경직도가 그려졌는데, <누숙 경직도樓璹耕織圖>를 모본으로 제작된 <패문재경직도佩文齋耕織圖>가 가장 유명하다. <패문재경직도>는 청淸나라 강희 연간(康熙, 1662~1722) 때인 1696년에 초병정焦秉貞(자오 빙즈엉)이 투시원근법을 사용하여 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는 조선 중기인 1498년에 <누숙경직도> 모본이 전래되었다고 추정된다. <패문재경직도>는 18세기 초엽이나 늦어도 중엽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남아 있는 경직도로는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논갈이> 등의 경직도와 작자미상의 <경직도>(독일 게르트루드 클라센 소장) 등이 있다. 조선 후기 풍속화 중에 종종 보이는 논갈이, 베 짜기, 실감 기 등의 장면은 경직도에 그 연원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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